들어가며
일반적으로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합격을 기원하며 가장 많이 전하는 선물이 엿 혹은 찹쌀떡이다. 엿의 달라붙는 성질과 찹쌀의 끈적이는 성질처럼 시험에 잘 붙으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수능을 앞두고 엿이 불티나게 팔리지만 예전 대학 본고사가 있던 시절에는 입학시험 보는 날에 대학교 교문이 엿으로 덕지덕지 도배가 되었다고 한다. 시험에 합격하거나 불합격했다는 말 자체도 엿하고 관계가 있다. 합격, 불합격을 우리말로는 시험에 “붙었다” 혹은 “떨어졌다”라고 표현하는데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한국문화기초용어사전에는 붙었다 떨어졌다는 표현이 엿의 성질을 합격에 비유한 것에서 유래 했다고 어원을 밝히고 있다.
시험 합격을 응원하는 선물의 유행
엿과 찹쌀떡의 끈적끈적한 물성만을 놓고 합격을 빌다 보니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수능 응원 선물이 생겼다. 끈끈한 접착제, 풀라는 화장지, 객관식 중심인 문제를 정답만 골라서 잘 찍으라고 도끼와 포크까지 선물한다. 최근 인기 있는 선물은 합격사과라고 한다. 민속신앙에서 무당이 만들어주는 부적처럼 재배할 때 부터 햇빛을 이용해 합격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사과라고 한다. 사실 합격 사과가 등장한 것은 유래 가 있다. 1991년 일본에 사과 수확기를 앞두고 태풍이 불었다. 사과재배 지역인 아오모리 현이 큰 피해를 입고 수확을 앞둔 사과의 90%가 태풍에 떨어졌다. 고민하던 사과재배 농민들이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고 달려 있는 사과를 마케팅에 이용한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문제가 나와도 시험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에서 합격사과라는 이름으로 몇 배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이다.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수험생과 학부모의 심리를 파고든 것이 유행을 시킨 것이다.
합격선물, 합격을 기원하는 엿 풍습의 유래
이렇게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 합격을 기원하며 음식으로 응원하는 것은 우리만의 풍속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은 대학입학시험이 매년 1월에 있고 전통적으로 합격하라는 뜻에서 엿을 선물하거나 수험생에게 모치라고 하는 찹쌀떡을 선물하는 것이 동일하다. 우리와 다른 풍속도 있다. 일본에서는 시험 전날 수험생이 돈가스를 먹는 풍속이 있는데 “승리하 다” 할 때의 이길 승(勝)자를 일본말로는 가스(かつ)라고 읽어 돈가스의 ‘가스’와 이긴다고 할 때의 ‘가스’가 발음이 같아서 돈가스를 먹고 시험을 보면 시험지와 이길 수 있으니까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믿으며 돈가스에 합격의 소원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가오카오(高考)’라고 하는 중국은 대학입학시험이 6월 초에 이틀에 걸쳐서 실시된다. 한국이나 일 본의 대입시험 못지않게 입학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다양한 합격 기원 음식이 발달해 있다. 가장 흔한 것이 입학시험을 앞두고 먹는 장원떡(狀元餠)이다. 장원떡은 나뭇잎으로 찰밥을 싼 쫑즈라는 음식인데 장원종이라는 이름으로 팔린다고 한다.
쫑즈라는 찹쌀떡은 원래 중국에서도 전통 명절인 단오에 먹는 음식이다. 춘추전국 시대때의 충신 이며 시인이었던 굴원(屈原)을 기리며 먹는 음식인데, 굴원에게 자녀의 합격을 기도하며 먹거나 찹쌀 떡을 뜻하는 쫑의 발음이 명중하다, 합격하다는 뜻의 가운데 중(中)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쫑즈라는 나뭇잎으로 싼 찹쌀떡을 먹으며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는 꿈을 품기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에 따라 옛날 국수를 먹고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했기 때문에 쌀국수를 먹거나 합격 죽을 먹기도 하는데 중국에도 다양한 합격기원 음식이 발달해 있다.
합격기원 음식 선물 등의 유래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역사를 따지고 올라가면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과거시험 제도가 생긴 이후부터였을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제도는 중국 수나라 때(서기 607년)부터 시작됐다. 과거 시험에서 합격기원 음식을 먹은 것도 수나라 이후부터일 것이며, 가장 빠른 합격 기원 음식은 수나라 다음에 들어선 중국 당나라 때로 확인된다. 최초의 합격 기원 음식은 엉뚱하게 돼지 족발이었다고 한다. 과거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면 붉은 글씨로 이름과 과거 시험문제를 적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시험을 볼 때 붉은 글씨로 시제를 적어 붉을 주(朱)자와 제목 제(題)를 써서 주제라고 하는데 돼지의 발굽이라는 뜻의 한자 저제(猪蹄)가 중국말로 발음이 같기 때문에 과거시험을 앞둔 유생들에게 친구들이 돼지 족발을 사주며 장원급제를 축원해 주었다. 언제부터 시험을 앞두고 엿을 먹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1960년대 이전부터 이미 고등학교, 대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 학부모들이 교문에 엿을 붙이고 합격을 비는 모습이 익숙한데, 그 이전에는 어땠을까? 조선시대에도 엿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빌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양에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유생들은 괴나리봇짐 속에 엿을 넣어 가지고 갔다고 한다. 길을 가다 배고플 때 먹으려는 의미도 있겠지만 장원급제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담겨 있다. 실제로 조선 후기의 과거 시험장에서 엿을 팔았다는 기록이 분명 이 무렵에도 엿을 먹으며 장원급 제를 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정조 때 화가인 김홍도가 그린 씨름도를 보면 목판을 목에 걸고 엿을 파는 아이가 보인다.
| 김호도의 씨름 | 
과거 시험장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영조 49년(1773년)에 과거를 보는 시험장에 엿장수가 함부로 들어와 엿을 팔아 문제가 됐다고 한다. 사헌부 소속 이한일이라는 감찰관이 과거시험을 보는 과장(科場)이 엄숙하지 못하여 떡과 엿, 따 위를 현장에서 터놓고 팔았으니 시험장 관리를 맡았던 금란관(禁亂官)을 파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영조실록에 실려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하루 종일 걸렸으니 간식으로 엿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엿을 먹으며 급제를 빌면서 심리적 안정을 취했을 가능성도 높았을 것이다.
찹쌀떡은 왜 합격선물이 됐을까?
우리가 수험생에게 선물하는 찹쌀떡은 우리나라 전통 떡인 인절미 종류가 아니다. 속에 단팥을 넣고 겉에 밀가루를 뿌린 찹쌀떡은 한때 우리가 흔히 모치(もち)라고 불렀던 일본에서 전해진 떡이다. 모치는 일본말로 떡이라는 보통 명사이고 우리가 말하는 모치, 찹쌀떡은 일본에서 배가 볼록나온 떡이라고 해서 다이후꾸 모치라고 부르는 떡이다. 원래는 클 대(大) 배 복(腹) 떡 병(餠)자를 써서 대복병, 즉 다이후쿠 모치라고 불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배腹자 대신에 복福자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 부터 일본에서 찹쌀떡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찹쌀떡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을 먹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며 합격의 기쁨을 맛보라고 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다이후쿠 모치를 선물하면서 합격의 큰 복을 미리 맛보라고 축원하는 것이다. 일본의 이런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합격 엿과 함께 합격 찹쌀떡을 선물하게 된 것이다.
엿을 먹으며 합격을 빌었을까?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풍속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이유, 내지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 조상들이 믿었던 미신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던 경우가 많다. 엿을 먹으며 소원을 비는것은 엿 자체에 그 이유가 있다. 엿이 기쁨을 부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엿을 뜻하는 한자에서 그 의미를 읽을 수 있는데 엿을 한자로는 이(飴)라고 쓴다. 글자를 풀어보면 먹을 식(食)변에 기쁠 태(台)자로 이뤄져 있다. 태(台)라는 글자는 세모처럼 생긴 글자인 사자 아래에 입구(口)로 구성된 글자다. 즉 입(口)을 방실거리며 기뻐한다는 뜻이다.한나라 때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태(台)를 기쁘다는 뜻의 이(怡)자와 열(悅)자로 해석을 했으니 보통 즐거운 것이 아니라 희열(喜悅)을 느낄 정도로 좋다는 뜻으로 먹어(食) 입을 방긋 거리게 웃으며 희열을 느낄 정도로 좋은(台) 음식이 바로 엿(飴)이라는 음식이다.
마무리
엿이 끈끈하니까 엿처럼 붙으라는 뜻이 아니라 엿을 먹으며 합격의 기쁨을 미리 맛보라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 때문에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엿을 주는 의미는 엿을 먹고 합격의 희열을 만끽하라는 속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옛날에는 엿이 꿀에 버금갈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귀중한 곡물을 졸여서 곡물의 에센스만 뽑아 만든 식품으로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