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우리나라 추어탕의 역사 유래, 다른 나라에서도 추어탕을 먹을까?

들어가며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주재료로 끓여 먹는 한국의 전통적인 보양식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서민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자, 여름철 무더위를 이겨내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꾸라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 추어탕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좋아하는 음식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핏 미꾸라지 추어탕은 우리나라에만 있을 뿐 다른 나라에서는 미꾸라지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름 보양식이냐, 아니면 가을 보양식이냐, 아니면 특별히 계절에 관계없이 수시로 먹는 보양식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오늘은 세계 여러 나라의 추어탕의 역사, 유래, 얽힌 이야기를 살펴볼게요. 


일본 추어탕 야나가와 나베

 우리나라도 남원, 원주, 서울 추어탕 등 지역별로 유명한 추어탕이 있지만 일본 역시 도쿄 추어탕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미꾸라지로 끓인 야나가와 나베(柳川鍋)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냄비에 우엉을 깔고, 그 위에 손질한 미꾸라지를 얹어 삶은 후, 계란을 풀어서 먹는 일종의 미꾸라지 스키야키라고 할 수 있다.

야나가와는 특히 한 여름에 먹는 음식으로 일본의 시조인 하이쿠에서는 여름을 대표하는 계절 물고기로 나오고 장어에 뒤지지 않지만 값은 싸서 에도의 서민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 역시 우리처럼 미꾸라지를 튀겨도 먹고, 간장에 조려도 먹는 등 다양한 미꾸라지 요리가 발달했다. 일본 서민들에게 미꾸라지는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다.

전 일본 총리였던 노다 요시 히코는 자신이 미꾸라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강조, 서민들에게 공감을 얻어 미꾸라지 총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노다 총리는 자신이 추어탕을 좋아하는 이유를 서민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자위대원이었던 아버지가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이었고, 어머니 역시 농부의 막내딸이었기에 어려서부터 미꾸라지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서민총리를 강조하려는 정치적 복선이 깔린 설명이기는 하지만 일본 서민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받았다. 우리와도 정서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대목이다.


미꾸라지에 대한 중국의 인식

중국 사람들도 미꾸라지를 먹는데 보양식이 넘치는 중국에서도 시골 농민들은 추어탕을 먹으며 더운 여름을 이겨낸다고 한다. 중국 농민들은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라고 말하는데,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재료 중에서 영양이 가장 풍부한 것이 바로 비둘기와 미꾸라지라는 것이다. 

미꾸라지는 힘이 좋아 한중일 3국 모두가 먹으면 힘이 난다고 ‘물속에 사는 살아있는 인삼’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옛날 의학서에서는 미꾸라지가 양기를 살리는 음식으로 풀이돼 있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도 미꾸라지는 양기를 돋우는 식품이라고 해서 옛날부터 미꾸라지를 정력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가을에 엿새 동안 미꾸라지를 먹으면 사라졌던 정력도 되살아난다는 속설도 있다.


한국인의 보양식 추어탕의 유래 역사

추어탕의 역사는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기 어렵지만, 미꾸라지를 먹기 시작한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입니다. 조선 시대 실학자 정약용의 저서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미꾸라지가 추어(鰍魚)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특히 추(鰍)라는 한자가 가을 추(秋)와 물고기 어(魚)로 이루어져 있어, 가을에 잡히는 미꾸라지를 먹는 풍습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에게 미꾸라지는 고려 때부터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송나라 때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 간 서긍도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미꾸라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겼는데 고려에도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들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데 미꾸라지, 전복, 조개, 왕새우 등을 잘 먹는다고 적어 놓았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부자와 서민이 즐겨 먹는 음식이 완전히 뒤바뀐 셈이어서 흥미롭다. 그렇지만 양반들은 미꾸라지나 추어탕을 대놓고 먹지는 않았다.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미꾸라지를 주로 성균관 부근에 사는 관노들과 백정들이 먹는다고 했다. 미꾸라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추어탕(鰍魚湯)은 많은 사람들이 특히 가을에 즐겨 찾는 보양식품이다. 서민들이 즐겨 찾는 해산물 중에서는 전어, 대하와 함께 미꾸라지를 3대 보양식품으로 꼽았는데 가을이면 살에 기름이 올라 영양이 풍부해지고 맛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문헌을 살펴보면, 미꾸라지가 서민들의 식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반 계층이 귀한 보양식을 챙겨 먹을 때, 서민들은 논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미꾸라지로 몸을 보신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중복에 미꾸라지를 잡고, 추탕이라는 이름으로 끓여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추어탕이 여름철 더위를 이기는 보양식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서울 지역에서 추어탕을 먹는 풍습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뼈째 갈아 끓인 뒤, 고춧가루, 산초, 숙주나물 등을 넣어 얼큰하게 먹었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가 먹는 추어탕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입니다.


세계 공통 음식문화 서민은 추어탕, 중산층은 장어

장어 역시 한·중·일 3국에서 공통으로 먹는 여름 보양식이다. 추어탕이 주로 농민의 음식이었다면 장어는 중산층의 보양식이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여름에 장어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있어 일본 복날에는 우리가 삼계탕을 먹는 것처럼 반드시 장어덮밥을 먹는다.일본에서는 장어가 우리로 치면 복날에 먹는 음식이다. 장어를 먹으면 여름을 타지 않는다는 속담까지 있다. 일본 고전인 만엽집(萬葉集)에 기록될 만큼 여름철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은 역사가 꽤 깊다. 중국도 비슷하다.

송나라 때 발행된 태평광기(太平廣記)라는 설화집이 있다. 이 책에 장어를 죽은 사람의 목숨도 살리는 보양식으로 묘사해 놓았다. 과촌(瓜村)이라는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전염병에 걸렸는데 죽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전염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인을 산채로 관에 담아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관이 하류에 있는 금산(金山)이라는 마을까지 떠내려갔는데 그곳 어부가 관을 열어 보니 여인이 아직 살아있었다. 어부가 여인을 어막에 눕혀 놓고 장어를 먹였다. 오랜 기간 동안 장어를 먹었더니 마침내 여인의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여인은 자신을 살려 준 어부에게 시집을 갔는데 죽을 때까지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추어탕
추어탕


마무리

그만큼 미꾸라지 추어탕이 우리한테, 특히 서민들한테 친숙한 음식이기 때문이고 또 다른 나라에서는 미꾸라지 요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사실 미꾸라지는 한·중·일 공통 음식이다. 논이 있는 곳에는 대부분 미꾸라지가 살고 있으니 당연히 다른 나라에도 미꾸라지가 있을 것이고, 추어탕으로 먹는지 혹은 전골로 먹는지, 아니면 구이로 먹는지 요리 방법과 먹는 형태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과 일본, 중국에는 모두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