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왕이 살아서 정치를 하는 곳이 궁궐이라면, 죽어서 정치를 하는 곳은 왕릉이다. 왕릉은 선왕과 후왕이, 그리고 조정 대신들이 정치 권력을 두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는 장소다. 아름다운 조선 왕릉은 조선 왕조의 사상과 문화뿐 아니라 정치사를 읽어내는 데도 아주 흥미로운 텍스트다.
천애 절벽의 페르시아 왕릉
천 길 낭떠러지 암벽을 파서 왕릉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 지금의 이란 일대에서 기원전 700~500년 무렵에 번성한 고대 페르시아 왕국이 그랬다. 이란 중부 사막 지대의 우뚝솟은 바위산에 형성된 나크시에로스탐(Naqsh-e Rostam)이란 유적은 수십 미터나 되는 암벽 중턱을 따라가며 십자 모양으로 표면을 깎아내고 그 정중앙을 방형으로 구멍을 파서 나란히 네 개의 왕릉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표면에서 대략 10미터는 될 듯한 지점에 있다. 이들 왕릉 주인공은 크세르크세스, 다리우스 1세, 아르타크 세르크세스 1세, 그리고 다리우스 2세라고 일컬어진다.
나크시에로스탐 |
세계에서 가장 큰 왕릉은 어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세계 최대의 왕릉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우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지 만, ‘덩치 챔피언’은 일본에 있다. 일본 오사카 사카이시라는 곳에 있는 다이센료고분이 그 주인공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열쇠 구멍 같다. 앞쪽에는 사각형의 평탄한 대지를 만들고, 그 뒤쪽에 봉분을 쌓아 올렸다. 그래서 앞쪽은 네 모나고, 뒤쪽은 둥글다 해서 이런 무덤을 일본에서는 전방후원분이라 한다. 그 주변으로는 거대한 도랑 겸 호수가 세겹으로 형성돼 있다. 이런 도랑 시설을 해자라 한다.
다이센료고분 |
규모를 보면, 앞쪽 사각형 평탄 대지에서 뒤쪽 원형 봉분까지 길이가 자그마치 486미터다. 그 앞쪽 폭은 305미터에 이르며, 뒤쪽 봉분은 지름 245미터에 높이는 35미터나 된다. 그 주변을 두른 도랑은 외곽 기준으로 길이가 무려 2718미터나 된다. 이 무덤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무덤은 일본 황실 재산이다. 천황, 혹은 그 조상이 묻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분이니 당연히 일본에서는 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본에는 이만한 규모에 이르는 고분이 또 하나 있으니, 같은 오사카 하비키노시에 있는 곤다고뵤야마 고분으로, 길이가 422미터나 된다.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고분은 경주시 황남동 대릉원 안에 있는 황남대총으로, 봉분 두 개를 이어붙인 쌍분이다. 그 규모는 남북 길이 120미터, 높이 23미터이니, 이에 비해 이들 일본의 옛 무덤이 얼마나 규모가 방대한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왕릉의 덩치와 비례해 무덤을 만든 왕조의 국력을 가늠하는 경향이 많다. 인도 무굴제국의 샤자한이 죽은 왕비를 추모해 건립 했다는 타지마할도 비슷한 시각에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왕릉의 덩치와 국력은 하등 관계없다. 내세울것 없는 사람이 힘만 자랑한다는 말이 있다.
마무리
왕릉은 철저히 지역과 시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왕릉을 생각할 때 이 점을 먼저 확실히 해야 한다. 왕릉이 없는 곳도 있고, 있었던 시대도 있으며, 그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 까닭에 같은 왕릉이라 해도, 그 모양이나 그를 향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자리 또한 엄청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