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고를 때 알아야 하는 정보 중에 하나가 바로 포도 품종입니다. 사실 포도 품종은 전 세계에 셀 수 없이 많은 종류가 존재하지만, 와인 초보자 입장에서는 그 많은 것들을 다 알 필요는 없겠지요.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포도 품종! 대표적인 품종 몇 가지만 알아둬도, 시중에 판매되는 와인의 60%는 커버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실패할 확률이 적은 레드 와인 포도 품종 5가지를 추천합니다.
1. 카베르네 소비뇽 (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 소비뇽은 레드 와인 하면 단연 1등으로 떠오르는 품종입니다. 태생은 프랑스 보르도의 메독인데, 적응력이 좋아 미국, 호주, 칠레 등으로 확산되었어요. 프랑스 보르도 지역에서는 메를로나 카베르네 프랑 등의 다른 품종과 블렌딩 되지만, 미국, 칠레, 호주 등의 신세계 국가에서는 단일 품종으로 많이 양조됩니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작은 알, 두터운 껍질, 많은 씨앗을 가진 게 특징이에요. 두꺼운 껍질 덕분에 충분한 색소와 풍부한 타닌이 들어있고, 생장 시간이 길다 보니 일조량이 충분해야 완숙에 이를 수 있답니다. 껍질이 두텁다는 것은 병충해에도 비교적 저항력이 있다는 뜻이어서 적당한 일조량이 보장되면 세계 어디서나 재배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환경 적응력을 보여준 듯싶네요. 카베르네 소비뇽은 풍부한 타닌과 구조적 치밀함 덕분에 장기 숙성에 가장 적합하답니다.
카베르네소비뇽 |
카베르네소비뇽은 보통 강한 탄닌에 풀바디 풍미를 가지고 있죠. 탄닌의 풍미는 풍부한 다크 과일 풍미, 블랙체리,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 맛이 나죠. 또한 카시스, 블랙베리, 파프리카, 자스민, 바닐라, 감초, 가죽, 담배, 삼나무, 훈연 향도 느낄수 있어요.
2. 메를로 (Merlot)
메를로는 보르도 전체에서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오히려 재배량이 더 많습니다. 지롱드 강 우측에 있는 생테밀리옹이나 포므롤 지역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메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해 알이 크고, 껍질은 덜 두꺼우며 더 빨리 완숙에 이릅니다. 알이 크고 껍질이 얇아 과육의 부피가 커서 많은 과즙을 얻어낼 수 있어요. 껍질이 얇아 중간 정도의 색소와 타닌을 가지는데, 다른 품종보다 당분이 많아서 완성품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약간 높을 수 있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강하지 않은 타닌과 부드러운 과실 풍미가 유연한 실크 같은 느낌의 와인이어서 단일 품종으로도 사랑받으며, 와인 초보자가 좋아할 만한 품종입니다. 메를로는 거의 대부분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병입 하는데, 중장기 숙성은 물론, 일찍 숙성되어 영 빈티지일 때도 음용하기 괜찮다고 합니다.
메를로 |
메를로는 미디움에서 강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레드와인에 비해 탄닌이 낮아서 부드러운 탄닌을 통해 과일 풍미, 자두와 블랙체리, 제비꽃, 민트, 올리브, 모카 등의 맛과 향이 납니다.
3. 피노 누아 (Pinot Noir)
피노 누아는 한마디로 가장 까다롭고 예민한 품종입니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피노 누아 와인은 비단결 같은 식감과 섬세한 산미, 복합스러운 풍미가 잘 조합되어 정교한 맛을 음미할 수 있지만, 반대로 조악스럽게 만들어지면 너무 진하거나 묽기도 하고 복합미가 부족하여 실망스러울 수도 있답니다. 피노 누아는 재배 환경에 매우 민감한 품종이어서, 고급 와인은 주로 부르고뉴 근방의 제한된 지역에서만 생산된다고 해요. 피노 누아는 껍질이 매우 얇아 생장 시간이 짧고 빨리 완숙에 이르는 특성을 가졌어요. 너무 더운 지역에서는 쉽게 과숙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선선하고 건조하지도 습하지도 않은 지역을 선호합니다. 참 까다로운 품종이죠. 피노 누아는 껍질이 얇아서 중간 정도의 타닌과 미디엄 바디의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색은 투명도가 매우 높은 루비 빛을 띠는데, 이 점은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가 짙은 심홍색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피노누아 |
산미가 좀 높은 편인데, 이 산도가 와인을 구조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이를 위해 오크 숙성도 짧게 하는 편이라고 하네요. 피노누아는 미디엄 바디의 드라이 와인으로 과일 풍미의 허브와 따뜻한 느낌의 향신료 향이 지배적이죠.
4. 시라 (Syrah) / 쉬라즈 (Shiraz)
프랑스에서는 시라, 호주에서는 쉬라즈로 불려요. 1830년대에 호주에 발을 디딘 이 품종이 지금은 '호주 = 쉬라즈'라는 등식으로 인식될 정도로 호주를 대표하는 품종이 되어 버렸답니다. 이 품종을 대표하는 맛은 바로 달콤함과 매콤함이에요. 어떻게 와인이 매콤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고추장같은 매콤함이 아니라 후추 향과 같은 매콤한 향이랍니다. 짙은 보랏빛을 띠는 이 시라는 풍부한 타닌과 튼튼한 골격을 갖추고 있고, 따뜻하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란다고 해요. 프랑스 론 지역으로 대표되는 시라 버전과 호주로 대표되는 쉬라즈 버전의 와인 레이블을 살펴보면 그 느낌도 약간씩 다르다는 걸 느끼실 거예요.
쉬라 시라즈 |
쉬라는 미디엄에서 풀바디감을 주는데 진보라색을 띠며 와일드한 블랙 과일, 보이즌 베리, 블랙베리, 검은 후추, 다크 초콜릿, 감초 등 스파이시한 향과 맛을 제공하죠.
5. 산지오베제 (Sangiovese)
산지오베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이며, 토스카나 지역을 대표하는 포도 품종으로 비교적 산미가 높고, 중간 정도의 타닌을 지닙니다. 그리고 환경에 민감한 편이라 생산 지역에 따라 맛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해요. 이 품종은 가볍고 일상적으로 마실 수 있는 와인부터 세계적 수준의 높은 품질의 와인까지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요. 토스카나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들은 모두 산지오베제로 만들어진다네요. 산지오베제는 산도가 높아 양념이 강한 음식과 두루두루 어울리며, 토마토소스를 곁들였을 때 맛이 죽지 않는 대표적인 와인이라고 합니다.
산지오베제 |
미디엄 바디에서 실키한 탄닌과 신맛이 나며 붉은색 과실의 향이 지배적이며 레드체리, 딸기, 제비꽃, 허브, 먼지향, 커피 향 등 맛이 강하고 과일 풍미가 넘쳐 흐르는 품종이죠.
카베르네 소비뇽이 독보적인 1등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와인 초보자가 처음 접하기엔 매우 무겁게 느껴질 수가 있다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레드 와인을 처음 접한다면 비교적 가장 떫은맛이 약하고 섬세한 피노 누아나 부드러운 질감의 메를로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싶네요. 그리고 저처럼 '신맛' 자체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분들은 산지오베제가 약간 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보통 다른 와인보다 이탈리아 와인이 상대적으로 상큼한 맛이 강하기 때문에, 신맛에 다소 약한(?) 저는 음식 페어링에 좀 더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상큼한 맛을 잘 즐기는 편으로 진화한거 같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