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수원화성의 서쪽에 위치한 화서문(華西門)은 정조의 개혁 의지와 실학 사상이 담긴 걸작으로 보물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원화성의 4대문 중 건축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문입니다. 화서문은 1794년 9월 25일 착공되어 1795년 7월 20일에 완공되었는데 문루 공사는 서쪽을 담당한 유언선이 책임졌으며, 옹성은 돌을 다루는 석수들이 맡았습니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수원화성의 여러 건축물이 파괴되었지만, 화서문은 다행히 큰 피해를 입지 않아 현재까지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수원화성의 아름다운 자연과 하나된 모습의 화서문과 독특한 건물의 지붕에 대해서 살펴볼게요.
수원화성의 서문 화서문
화서문은 보물 403호로 수원화성의 4대문 가운데 팔달문과 화서문만 보물로 지정되어있다. 이는 한국전쟁 후에 이 두개의 문만이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서문에 걸려있는 편액의 글씨는 정보 시대의 재상이었던 채제공이 쓴것이다.
화서문은 장안문이나 팔달문에 비해 간소하게 만들었는데 수원화성의 주요 도로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길이므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하였다.
화서문이라는 이름은 화성(華城)의 서쪽(西)에 있는 문이라는 뜻이기도하며 또한, 꽃화(華)는 아름답다, 빛나다는 의미도 담고 있어, 화서문은 아름다운 서쪽 문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됩니다.
서쪽의 화서문은 산을 곁에 두고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대문이지만 소박하게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
화서문과 주변 시설문은 크기나 구조가 동쪽의 창룡문과 거의 흡사하고, 화서문의 옹성 역시 열려있는 옹성으로 창룡문의 옹성과 같은 모양이기 때문에 쌍둥이 문이라고도 한다.
| 화서문 |
자연과 하나된 모습 화서문
화서문에서 서쪽으로는 급한 경사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팔달산과 정상까지 오르막이 되며 성벽이 지형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며, 벽의 일부가 휘어져있는데, 이것은 지형에 따라 성을 쌓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성을 쌓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화서문의 건물의 형태(지붕)에 대해 살펴보자
수원화성 4대문의 지붕 모양이 각각 다른 이유는 건축적 용도와 상징성에 따라 설계되었기 때문인데 특히 화서문의 지붕은 다른 문들과 달리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 지붕의 형태 |
수원화성의 4대문은 두 가지 지붕 형식으로 나뉩니다. 장안문(북문)과 팔달문(남문)문은 각각 수원화성의 정문과 부문 역할을 하며, 장안문은 정조가 한양에서 수원으로 행차할 때 가장 먼저 통과하는 문이므로, 웅장함과 위엄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 두 문에는 조선 시대 궁궐이나 주요 건물에 주로 사용되는, 지붕의 용마루가 직선으로 된 가장 격조 높은 우진각지붕이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창룡문(동문)과 화서문(서문)은 성곽의 측면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데 정문만큼의 위엄보다는 군사적 효율성과 건축미를 동시에 고려했습니다.
이 두 문에는 건물의 옆면 지붕이 삼각형 모양을 하고, 앞뒤 지붕과 연결된 형태의 팔작지붕이 사용되었습니다.
| 화서문 지붕 팔작지붕 |
팔달문과 장안문의 지붕은 우진각지붕의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건물의 격식에 따라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마치며
화서문은 거친 자연석을 쌓아 올린 견고한 홍예문과 그 위에 자리 잡은 우아한 목조 문루가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육중한 돌과 섬세한 나무의 대비는 시각적인 긴장감과 동시에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특히 지붕은 수원화성의 정문인 장안문이나 팔달문과는 다른 팔작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겹겹이 뻗어 나가는 처마의 선이 더욱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곡선을 만들어냅니다.